Western Austr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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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stern Australia


2017-01-24 - 2017-02-02까지 서울대학교 아마추어천문회의 사람들과 함께 서호주로 별을 보러 다녀왔다. 일행은 나랑 한다빈 형, 김동겸 형, 진선호 형, 정만근 형, 김경훈까지 총 여섯. 그 여행 후기를 남겨 본다.

매우 긴 후기이니 큰 제목들을 훑어보고 읽고 싶은 부분만 읽는 것을 권한다. (뭐 굳이 전체를 읽겠다면 말리지는 않는다.) 그리고 아래 여행 후기는 기억에 의존해 돌아오는 항공편 안에서 쓰기 시작해서 2월 27일에야 완성되었기 때문에 기억의 상태에 따라 약간의 왜곡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참고하기 바란다.

그리고 관측을 하는 날은 밤을 샜기 때문에 시간 구분이 정확히 날별로 되어있지는 않다. 때문에 25일 밤부터 26일 아침까지 한 관측은 25일에 함께 분류하는 식으로 정리했다.


1/24 (화) : 이동

인천에서 퍼스까지

1월 24일은 종일 이동의 시간이었다. 한국에서 24일 늦은 오후에 출발해서 쿠알라룸푸르를 경유해 25일 새벽에 퍼스에 도착했다.

항공편은 서울(인천)에서 쿠알라룸푸르까지 D7 505편, 쿠알라룸푸르에서 퍼스까지 D7 236편을 이용했다. 참고로 대한민국에서 서호주로 가는 직항편은 없고, 항공사에 따라 홍콩 또는 쿠알라룸푸르, 싱가포르 등에 위치한 허브 공항을 경유한다. 우리는 여러 가지 항공편 중 제일 저렴했던 에어아시아 엑스의 쿠알라룸푸르 경유편을 이용했다. 총 소요 시간은 공항에서의 환승 대기 시간을 제외하고 11시간 30분 정도였다. 한국에서 퍼스로 가는 경로의 거의 중간에 쿠알라룸푸르가 위치하기 때문에 소요 시간이나 동선에서의 손해는 거의 없다.

쿠알라룸푸르행 탑승권

처음에는 내 수하물이 에어아시아 엑스의 수하물 제한 중량인 20kg에 거의 들어맞을 것이라 예상하고 20kg 수하물 옵션으로 웹 체크인을 했는데(에어아시아는 수하물 중량에 따라 요금이 다르다. 기본 옵션인 20kg부터 시작해서 25kg, 30kg, 40kg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 크나큰 오산이었다. 배낭과 캐리어의 무게를 재 보니 합계 30kg을 넘는 바람에 집에서 환상의 저울쇼(…)를 펼쳐야 했다. 인천공항에서는 휴대수하물의 무게는 검사하지 않으니 저울로 계속 달아 보며 캐리어 무게를 맞추었다. 아예 처음부터 수하물 제한 중량을 25kg이나 30kg 정도로 올려 놓았으면 훨씬 편했을텐데 아쉽다.

출발 전 인천국제공항 3층 출국장의 버거킹에서.


항공편 1: 쿠알라룸푸르로…

인천에서 쿠알라룸푸르로 이동하는 항공편에서는 기내식을 시켜 먹었다. 에어아시아는 모든 기내 서비스가 부분 유료화되어 있어 기내식이나 음료는 물론이고 담요도 유료로 대여해야 한다. 가성비는 상당히 좋았다. 도시락 형태로 제공되는 기내식은 모든 메뉴가 18링깃(4600원정도)이었다. 다만 링깃이 아닌 다른 통화로 결제할 경우 작은 단위를 전부 올림(!)으로 계산해버리니 한 번에 여러 개를 사거나 신용카드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원화의 경우 백의 자리에서 올림을, 호주 달러의 경우 소숫점 아래를 모두 올려버리는 기적의 계산법(…)이 적용된다.

나는 인도네시아 요리라고 소개된 쇠고기 요리를 시켜 먹었는데, 고기는 맛있었지만 밥이 끔찍했다. 마치 냉장보관하던 즉석밥을 익히지 않은 채 그대로 먹는 듯한 퍼석퍼석함이었다. 개인적으로 찰기가 적은 인디카 쌀을 좋아하는데도 너무 맛이 없었다. 밥류를 시킬 생각이라면 볶음밥류든 뭐든 밥에 뭔가 간이 된 물건을 시키는 것을 추천한다. 볶음밥류는 인디카 쌀을 딱히 싫어하는 게 아닌 한 그냥 도시락 먹는다고 생각하고 먹으면 맛있다. 에어아시아의 기내식은 여행 중 먹었던 모든 끼니를 통틀어 가장 맛있는 음식 중 하나였다.

기내식. 차례로 설정샷과 실제.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아이스티나 초코우유, 칼피스같은 음료류는 전부 8링깃인데, 이 역시 한국의 편의점에서 파는 음료류와 비슷하거나 살짝 비싼 가격이다. 칼피스와 망고주스를 사 마셨다.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그렇게 6시간 30분 정도를 이동해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KLIA2 터미널에 도착했다. 수하물은 자동으로 다음 항공편으로 연결되었고, 탑승권만 환승 과정에서 별도로 발권해야 했다.

퍼스행 항공권. 종이의 재질부터 ‘나 저비용항공사다’라고 외치고 다니는 것만 같다(…)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의 휴대품 검사는 인천국제공항보다 훨씬 까다로웠다. 인천공항에서 채 잡지 못한(…) 물건들을 다 잡아내었다. 일행 중에서는 가방 속에 커터칼이 있는 줄 모르고 인천공항의 검색대를 무사히 통과했는데 쿠알라룸푸르에서 잡힌 사람도 있었다(…) (참고로 이 터미널에서는 약 2주 반쯤 뒤에 김정남 피살 사건이 일어난다.)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의 대기시간은 총 2시간정도였는데, 항공기에서 내리니 탑승시간까지 한시간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공항을 좀 둘러보다가 동남아식 국수 요리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이 있길래 국수 요리를 사 먹었다. 국수 요리는 꽤나 맛있었다. 여행 중 사 먹은 모든 끼니를 통틀어 제일 맛있었던 끼니였다.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먹은 국수 요리.

옆에는 스타벅스도 있었는데 한국보다 아주 조금 저렴했다. 뭐 커피 맛이 다 거기에서 거기겠지 하고 마셔보지는 않았는데 이제 생각해보니 동남아에서 주로 기르는 소는 한국에서 기르는 소와 다른 품종이라 우유 맛도 다르다. 라떼류라도 한 번 마셔 볼 걸 그랬다.


항공편 2: 드디어 퍼스로…

퍼스행 항공편은 밤 늦은 시간 쿠알라룸푸르를 떠났다. 하지만 아무리 야간 항공편이라 한들 에어아시아가 사람을 그냥 자게 내버려 둘 리가 없다. 한밤중의 항공편인데도 승무원들이 불이 켜진 기내를 돌아다니며 기내식을 팔고, 간식거리를 팔았다(…) 에어아시아에는 Quiet zone이라고 해서 승무원들의 영업이 덜하고 조금 더 조용한 공간이 따로 있는데 (물론 유료다) 업그레이드를 할 걸 그랬다.

쿠알라룸푸르에서 퍼스로 가는 항공편에서는 창가 자리를 배정받았는데, 에어아시아 특유의 좁은 좌석 피치와 3-3-3 좌석 배치의 조합은 정말 끔찍했다. 참고로 에어아시아 엑스의 주력기종인 A330은 원래 2-4-2 좌석 배치가 표준이다. 즉 원래 없던 열 하나를 더 우겨넣은 것이다. 창가 자리에서 화장실에 가거나, 머리 위의 화물칸을 열기 위해서는 두 사람을 깨워야 했다. 내 옆에 앉은 사람은 팔걸이를 밟고 좌석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던데(…) 난 팔걸이를 밟아도 옆 사람을 깨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난 퍼스에 도착할때까지 한 차례도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2-5-2배치에서 5의 가운데 앉는 사람은 접근은 어렵지만 적어도 양 옆으로부터 접근 가능하기라도 하지, 3-3-3배치의 창가에 앉는 사람은 같은 접근성에도 불구하고 한 쪽으로부터밖에 접근하지 못하는데 대체 왜 이런 참혹한 배치를 고안해 낸 건지 모르겠다. 요즘 몇몇 항공사들이 기존의 2-5-2배치의 B777을 3-3-3으로 개조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대체 왜 그러는 걸까?

퍼스행 항공편에서는 립톤 레몬녹차를 사 마셨다. 맛은 뭐 별 거 없고 그냥 레몬녹차 맛이다. 퍼스를 향해 한참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서쪽으로 지고 있는 오리온자리와 시리우스, 카노푸스가 보였다. 남반구로 가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문득 카메라를 꺼내 별을 찍어 볼까 했지만, 내 자리가 엔진 바로 옆 자리라 창 밖으로 착륙등이 밝게 빛나고 있었기에 이내 포기했다.

기내에서 폰으로 담아 본 오리온자리와 시리우스, 그리고 카노푸스. 창문의 떨림이 생각보다 심해서 사진이 꽤 흔들렸다.

기어 S3의 기압계 기능. 직접 보니 좀 신기했다 ㅋㅋ


1/25 (수) : 또 이동, 그리고 호주에서의 첫날 밤

퍼스 도착, 그리고 또 이동

1월 25일 새벽 드디어 항공기가 퍼스 공항에 착륙했다. 착륙을 앞두고 여느 항공편이 그렇듯 여러 가지 안내방송이 나왔는데, 호주의 검역에 대한 무시무시한(?) 경고가 나왔다. 나무 제품 등을 포함해서 식물이나 동물로 만들어진 모든 물건이 검역 없이는 반입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심지어 같은 비행기를 탄 사람 중 한 명은 밀짚 모자를 빼앗기기도 했다(…)

창 밖으로 보이는 Garden Island.

착륙하면서 창밖 멀리 새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이 많이 보였는데 솔직히 좀 무서웠다(…) 이륙하자마자 버드 스트라이크를 당해 허드슨 강에 불시착했던 US 에어웨이즈 1549편 사건이 떠올랐다.

737과 A380이 함께 있으니 귀엽다.

쿠알라룸푸르에서 호주까지 우리를 날라 준 A330.

퍼스에 도착해서 첫째로 인상깊게 눈에 들어온 것은 어마어마한 검은색 매연(soot)을 내뿜으며 공항을 오가는 토잉카였다. 한국이었다면 진작 DPF를 설치하도록 했을텐데. 아무래도 워낙 인구 밀도가 낮다 보니 대기 오염이 적어서 자동차 매연에 대한 단속이 심하지 않은 듯 보였다. 도로 위에서도 수많은 화물차들이 언뜻 보기에도 진한 검은색의 매연을 내뿜고 다녔다(…)

호주의 출입국심사는 모든 과정이 자동화되어 있었다. 여권을 스캐너에 넣고 얼굴 사진만 찍으면 출입국 과정 모두 바로 통과된다. 한국의 자동출입국심사급으로 편리한 기능을 내국인 뿐 아니라 외국인도 모두 이용할 수 있다니 조금 신기했다.

호주에 입국하려면 세관 겸 검역신고서를 작성해야 했는데, 항공기 내에 마련된 신고서가 부족해서 난 신고서를 받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공항에 내려 위탁수하물을 찾고 따로 직원의 안내를 받아 세관신고서를 작성해야 했다.

퍼스에 도착해서는 일단 Optus라는 통신사를 통해 선불 유심을 구입했다. 2월까지가 프로모션 기간이라 $20만 내면 12GB의 데이터와 한국을 포함한 여러 개 국가로의 무료통화(단 문자는 10통밖에 하지 못한다)가 가능했기에 별 망설임 없이 데이터로밍을 취소하고 현지 유심을 이용했다. 커버리지가 KT를 통해 로밍을 했을 때 잡히는 Telstra에 비해 약간 안 좋긴 했지만 어차피 신호가 안 잡히는 곳은 어느 통신사든 안 잡히고, 신호가 잘 잡히는 곳은 다 잘 잡혔기에 큰 차이는 없었다.

그리고 바로 렌터카 카운터에 가서 미리 예약한 렌터카를 수령했다. 일행이 여섯 명이었고 짐이 꽤 많았기에 8인승 기아 카니발을 빌렸다. 호주는 영국의 영향을 받아 통행 방식이 좌측통행이다. 그래서 차를 처음 탔을 때 굉장히 어색했고, 이건 운전자들도 마찬가지여서 아무 생각 없이 역주행을 하려고 하거나 방향지시등 대신 와이퍼를 켜기 일쑤였다. 나중에 나도 잠시 운전을 해 봤지만 한국에서 운전을 하던 운전자가 좌측통행인 국가에서 운전하는 것은 정말 끔찍하다.

여행 내내 우리와 함께한 기아 카니발.

항공편으로 도착한 곳은 서호주 최대 도시인 퍼스였지만, 사진을 찍으러 갈 곳은 사막 한가운데의 금광도시인 캘굴리(Kalgoorlie)였다. 퍼스와 캘굴리는 약 700km정도 떨어져 있다. 그래서 캘굴리까지 이동하기 전에 먼저 이동하면서 먹을 간식거리와 음료, 선크림 등 여러 잡화들을 구입하기 위해 대형 마트를 찾았다.

빠른 이동을 위해 공항 근처에 있는 마트를 찾아봤는데, 호주의 두 거대 대형마트 체인인 Woolworths와 Coles가 바로 옆에 붙어 있었다. 한국으로 치면 롯데마트와 홈플러스가 바로 잎에 붙어 있는 셈이다. 처음에는 그 주변 동네가 특이하겠거니 했는데 여행 동안 본 Woolworths와 Coles는 거의 항상 쌍으로 존재했다. 대체 왜 항상 경쟁업체 바로 옆에 출점을 하는 건지 호주 여행 내내 한참 고민했지만 답은 찾을 수 없었다.

Woolworths 건물로 들어가는 길.

Woolworths 건물에 있던 푸드코트에서 랩과 샐러드로 아침을 해결했다. 둘 다 아주 짜고 셨다. 특히 샐러드는 식초와 소금을 엄청나게 뿌려 놓아 조금 먹다가 더 이상 먹지 못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이 영 연방 산하의 국가라는 것을 처음으로 체감한 순간이었다.

샐러드와 랩을 파는 가게.

Woolworths 건물 내 푸드코트에서.

마트에서 파는 우유나 달걀과 같은 축산물의 상당수는 방목해서 키웠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경우 한국보다 저렴했다. 호주는 식당의 음식은 비쌌지만, 식재료들은 한국과 비슷하거나 더 저렴한 편이었다. 인건비가 비싼 이유일 테다. 조금 충격적이었던 건 생수 가격이 대체로 리터당 1~2AUD 수준이었는데, 우유 가격은 리터당 1AUD 정도였다. 우유가 물보다 싸다(!!) 그래서 여행 내내 우유를 엄청나게 마셨다. 아, 참고로 맥도날드 맥모닝 세트의 가격은 8AUD정도.

Woolworths에서의 첫 쇼핑.


퍼스에서 캘굴리로

퍼스 출발!

기아 카니발의 연료탱크 용량은 70L이다. 퍼스에서 캘굴리까지 700km의 거리를 한 번에 이동하기는 어려운 용량이다. 그래서 중간에 Northam이라는 마을에서 한 번, Southern Cross라는 마을에서 한 번 주유를 했다. 호주의 주유소는 모두 셀프 주유 방식이다. 먼저 셀프로 기름을 넣고, 주유소 건물 안의 편의점(거의 모든 주유소에는 편의점이 딸려 있다)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는 방식이다. 여행 중 기름값 관련 회계는 내가 담당하기로 했기에 주유는 모두 내가 했다.

캘굴리로 가는 길.

한국의 셀프주유소의 경우 결제를 포함한 모든 과정이 자동화되어 있고, 주유기에 유증기 회수 장치가 있어 주유를 하는 과정에서도 냄새가 그닥 나지 않는다. 하지만 호주에서 가 본 주유소 7곳은 모두 유증기 회수 장치가 없어 주유 과정에서 냄새가 굉장히 심하게 났고, 주유기 주변으로 휘발유 증기가 새어나와 아지랑이가 생기는 모습이 보였다. 꽤나 위험해보였다.

호주의 기름값은 한국보다 조금 싸다. 옥탄가 91의 일반 무연휘발유 기준으로 보통 리터당 130~140센트 정도였는데, 한국돈으로는 1100원 후반대에서 1200원대 정도인 것이다. 경유도 무연휘발유와 거의 비슷한 가격이었다. 원래 경유와 휘발유의 원가는 비슷하지만, 한국의 경우 화물차를 비롯한 영업용 자동차에 경유를 많이 쓰기 때문에 경유에 붙는 세금이 휘발유보다 조금 싸고, 그래서 경유가 휘발유보다 저렴하다. 호주는 경유와 휘발유에 붙는 세금이 거의 동일한 모양이다.

캘굴리로 가는 길의 풍경들

더스트 데빌(일종의 회오리바람)도 있었다!

캘굴리까지의 길은 휴대전화 전파조차 잡히지 않는 길고 긴 여정이었다. 아침에 출발했는데 해가 질 무렵이 되어서야 캘굴리에 도착했다. 퍼스에서 캘굴리까지는 계속 고속도로를 이용했는데, 대부분 구간은 드문드문 추월구간이 있는 왕복 2차로였다. 88올림픽고속도로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호주의 고속도로는 산 하나 없는 평평한 지형 위로 크고 아름답게 뻗은 선형이기 때문에 왕복 2차로에 평면교차로가 난무함에도 불구하고 먼 도시를 의외로 빠르게 이어준다. 끝없는 도로에서는 신기루가 계속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지평선 근처 도로가 뭔가 이상하게 생겼다 싶으면 백이면 백 신기루였다.

크고 아름다운 선형..

운전자 두 명 중 한 명이었던 다빈이 형

오히려 선형보다 더 큰 문제는 도로 중간중간에 산재해 있던 공사구간들과 화물차들이었다. 고속도로 중간중간에는 재포장을 하고 있어서 속도를 내지 못하는 구간이 수두룩했다. 게다가 호주의 고속도로에는 로드트레인이라고 해서, 트럭 한 대에 3~4량정도로 트레일러를 길게 연결한 차량이 아주 많이 다니는데, 이들은 속도도 별로 내지 않는데다 길이가 50미터가 넘기 때문에 추월도 어렵다. 그 뿐 아니라 광산도시로 가는 길답게 각종 거대한 장비들을 실은 트럭이 많이 지나다녔는데, 이들 트럭 역시 캘굴리까지의 여정을 방해했다.

거대한 장비를 실은 로드트레인. 캘굴리의 노천 금광(Super Pit)에서 발파된 암석을 옮기는 트럭에 들어가는 타이어이다.


캘굴리에서의 첫날

그렇게 저녁에서야 캘굴리에 도착했고, 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한 숙소에 짐을 풀었다. 숙소는 침실이 세개 있고, 세탁실, 화장실, 샤워실, 주방, 거실 등이 갖추어진 집이었다. 짐을 정리하고 씻은 다음 바로 저녁을 먹으러 인도요리 집으로 향했다.

캘굴리는 인구가 5만명정도 되는 도시인데, 2층 이상의 건물은 찾아 보기 힘들었다. 도시 자체가 굉장히 저밀도인데다 대중교통이 전무하기 때문에 차가 없으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그래서 단순히 물건 하나를 사 오거나, 간단한 용무를 보고 싶어도 무조건 차를 타고 가야 한다. 첫날 저녁도 식당까지 10분정도 차를 타고 갔다.

식당 앞 주차장에서.

첫날 저녁을 먹은 인도 레스토랑

식당은 구글지도의 평점을 참고해서 골랐다. 난과 밥, 그리고 양고기 요리와 망고 치킨 커리, 시금치가 들어간 쇠고기 커리를 골랐는데 꽤 맛있었다. 시간이 이미 20시를 넘긴 시점이었기 때문에 빠르게 저녁을 먹고 관측지로 향했다. 저녁을 먹고 식당을 나오자마자 오리온자리가 하늘 높이 보였다. 그리고 도시 한가운데였는데도 은하수가 보였다(!!) 엄청난 기대를 품고 관측지를 찾아 동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캘굴리는 도시의 동쪽에 24시간 가동되는 금광이 있고, 금광의 약간 남동쪽에 제련소가 있다. 제련소의 불빛이 꽤나 밝았기 때문에 캘굴리를 출발해 제련소를 지나 더 동쪽으로 향했다. 첫날의 관측지는 캘굴리에서 Mount Monger Road를 통해 동쪽으로 12km정도 벗어난 곳이었다. 고속도로에는 상향등을 켜고 달리는 자동차들이 지나다녔기 때문에 샛길을 통해 고속도로에서 200미터정도 벗어났다. 그리고 그 곳의 하늘은 환상적이었다.

남쪽 하늘에는 대마젤란운과 소마젤란운이 떠 있었다. 마치 한 조각의 구름처럼 보였다. 마젤란’운(雲)’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마젤란운 동쪽에는 남십자성(Southern cross)과 False cross, Diamond cross가 차례로 보였다. 에타 카리나 성운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광해는 캘굴리 방향에만 약간 있을 뿐, 남쪽과 동쪽에는 전혀 광해가 없었다. 시간이 약간 흘러 암적응이 되자 은하수의 빛만으로도 주변 사물을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백마고지로, 수피령으로, 홍천으로, 그리고 양평으로 여러 차례 관측을 다녔지만 이 정도로 하늘이 좋았던 적은 없었다. 오리온 대성운이 맨눈으로 너무도 쉽게 보였고, 한국에서는 한 번도 맨눈으로 보지 못했던 프레세페 성단(Beehive Cluster, M44)이 맨눈으로 보였다. 전천에서 가장 밝은 구상성단인 오메가 센타우리도 맨눈으로 선명하게 보였다.

감탄도 잠시, 일행 모두 바로 촬영장비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삼각대를 일단 펴고, 적도의를 올렸다. 그리고 난 깨달았다. 우리가 남반구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여기서는 북극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극축 정렬

밤 하늘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기 위해서는 매우 오랜 시간동안 빛을 모아야 한다. 밤 하늘의 천체들은 아주 어둡기 때문에 적어도 수십 초, 길게는 수 시간씩 빛을 모아야 그럴 듯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한편, 지구는 약 24시간을 주기로 자전하기 때문에 별들도 약 24시간(정확히는 23시간 56분)에 한 바퀴씩 하늘을 움직인다. 그래서 밤 하늘의 빛을 오랜 시간동안 모으기 위해서는 하루에 한 번씩 뜨고 지는 별을 따라 카메라를 함께 움직여 주어야 한다. 카메라가 언제나 같은 별을 향할 수 있도록 하루에 한 바퀴씩 천천히 카메라를 돌려주는 것이 적도의이다. 이 적도의가 별을 추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적도의의 회전축을 지구의 자전축에 정확히 맞추어 주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극축 정렬이다.

한국을 포함한 북반구에서는 지구의 자전축이 향하는 곳과 매우 가까운 곳에 2등성의 밝은 별인 북극성이 보이기 때문에 극축 정렬이 매우 쉽다. 하지만 남반구에서는 북극성이 보이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남반구는 자전축 가까이에 딱히 밝은 별이 없다. 남반구의 자전축이 통과하는 별자리인 팔분의자리는 가장 밝은 별이 4등성일 정도로 아주 어두운 별자리이다.

남반구에서 극축을 정렬할 때에는 팔분의자리에 등변사다리꼴 모양으로 배열된 별을 쓰는데, 이들 별은 모두 6등성으로 맨눈으로는 거의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서 처음에는 극축을 맞추느라 갖은 고생을 했다. 10분이 넘게 스텔라리움을 찾아보고 적도의를 이리저리 기울이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선호형한테 도움을 청해서야 겨우 극축을 맞출 수 있었다.

그래도 한 번 극축을 맞춰보고 나니 그 뒤에는 비교적 수월하게 극축을 맞출 수 있었다. 스카이메모로 일단 극축을 맞춰보고 나니 스카이트래커는 1분 안에 극축을 잡는 데 성공했다. 조금 익숙해지고 나니 오히려 북반구보다 훨씬 정밀하게 극축을 맞출 수 있었다. 북반구에서는 북극성 하나만으로 극축을 정렬하기 때문에 정밀한 극축망원경이 아니라면 극축이 틀어진 게 각도(적경) 때문인지 중심에서의 거리(적위) 때문인지 판별하기 힘든데, 남반구는 별 네 개를 이용해서 극축을 맞추니 극축을 매우 정교하게 맞출 수 있었다. 그래서 북반구에서는 엄두조차 못 냈던 200mm 렌즈로 300초 추적 따위가 가능했다. (물론 이 경우 주기오차(Periodic Error)로 버리는 사진이 많아지긴 한다. 스카이메모의 경우 초점거리와 추적시간을 곱했을 때 20000~30000정도가 주기오차가 드러나지 않게 추적이 가능한 한계였다.)


관측 시작

극축을 맞춘 뒤 곧바로 관측을 하기 시작했다. 스카이메모에는 QHY8L CCD를 올렸다. 처음에는 샤오미 보조배터리의 USB 출력을 이용, 자작한 5V to 12V 승압회로를 통해 CCD에 전원을 공급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CCD의 냉각 장치가 너무 많은 전력을 소비해 보조배터리에서 자꾸 차단이 걸려버렸다. 냉각 장치를 끄면 정상 작동하는데, 냉각 장치를 켜면 바로 CCD의 전원이 나가버렸다. 냉각 장치를 끄고 관측하면 냉각 CCD를 쓰는 이유가 없으니 하는 수 없이 CCD는 자동차의 전원을 끌어다 돌려야 했다. CCD를 설치할 수 있는 곳이 자동차 주변 수 미터 이내로 엄청나게 제한되어서 아쉬웠다.

처음에는 QHY8L CCD에 캐논 300mm f/2.8 렌즈를 물리고, a5000에는 135mm 렌즈를 물렸다. 하지만 300mm f/2.8 렌즈는 상상 이상으로 다루기 어려웠다. 호핑 난이도가 높은 건 물론이고, 너무 무거워서 1kg짜리 균형추로는 추를 아무리 멀리까지 빼도 균형이 맞지 않았다. 그래서 300mm 렌즈는 첫날 이후로 다시는 천체사진용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135mm 렌즈도 a5000에 연결해 스카이트래커에 올리는 것은 무리였다. 렌즈 무게 때문에 자꾸 볼헤드가 틀어져서 원하는 구도로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 날부터는 a5000은 항상 칼 자이스 55mm f/1.8 렌즈만 연결해서 사용했고, 135mm 렌즈와 200mm 렌즈는 QHY8L CCD를 이용해서만 사용했다.

그리고 바로 두 메인 촬영 장비를 이용해서 관측을 시작했다. 원래 한국에서 짠 관측계획상으로는 하나의 사진을 탄생시키기 위해 적어도 한 시간에서 몇 시간의 노출을 줄 계획이었는데, 한국에서 한 시간을 노출해도 안 나오던 퀄리티의 사진이 호주에서는 5분의 노출로도 나왔다. 그래서 전반적인 촬영 계획을 대규모로 수정했고,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계획했던 구도의 사진들을 모두 찍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관측하기 좋은 날은 언제나 너무 춥다. 겨울에는 날씨는 맑지만 엄청나게 춥고, 여름은 습기가 너무 많다. 하지만 서호주의 여름은 따뜻한데다 건조해서 좋았다. 야간 최저기온도 섭씨 20도 정도라 그냥 일상복을 입고 밖에 몇 시간이고 있을 수 있었다. 다만 불을 조금이라도 켜면 파리와 나방 등 비롯한 곤충들이 달려들었다. (건조한 탓인지 의외로 모기는 많지 않았다.) 몸에 뿌리는 곤충 기피제를 가져가긴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첫날 찍은 사진들

남십자자리와 에타 카리나.

여행을 통틀어 300mm 렌즈로 찍은 유일한 천체사진인 에타 카리나 성운.

용골자리 부근. 커다란 거품 모양으로 생긴 Gum nebula가 잘 보인다.

전갈자리에서 땅꾼자리에 걸친 분자운 복합체.

남천의 은하수


끔찍했던 뒷정리

처음 관측 장비를 설치하던 때에는 몰랐다. 날이 밝고 보니 온 천지가 붉은 라테라이트(Laterite) 흙으로 뒤덮여 있었다. 땅에 내려놓았던 장비들은 온통 붉은 흙으로 범벅이 되었고, 내 흰색 신발도 선명한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캘굴리를 포함한 서호주의 많은 지역(Pilbara 지역과 Yilgarm 지역)에는 선캄브리아대에 퇴적된 산화철이 풍부한 퇴적층이 분포한다. 약 20억 년 전 지구상에 등장한 시아노박테리아는 최초로 물을 이용한 광합성을 시작하면서 엄청난 양의 산소를 생산해냈다. 호상 철광(banded iron formation)이라고도 불리는 서호주의 두꺼운 철 퇴적층은 이 때 생산된 산소가 바닷물 속에 녹아 있던 철 이온과 반응해 산화철의 형태로 가라앉으면서 형성된 지층이다. 캘굴리와 주변 지역 역시 예외는 아니다. 산화철을 다량으로 포함한 기반암이 수억 년 이상 별다른 지각변동 없이 지속적인 풍화를 받았고, 흙에는 산화철이 농축되어 석회암 지대의 테라로사마냥 선명한 붉은색을 띤다.

보통 이런 라테라이트 토양은 풍화가 매우 강한 열대 지역에 주로 분포하는데, 서호주는 오랜 기간 동안 지각 변동 없이 이동해 왔기 때문에 두꺼운 라테라이트 층이 만들어지고 유지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서호주는 전 세계 보크사이트 생산량의 1/3을 맡고 있는 세계 최대의 보크사이트 산지이기도 하다. 세계의 보크사이트를 책임진다! 서호주! 게다가 건조한 날씨 탓에 이 지역의 지표면에는 수분이 거의 없고, 부식토도 아주 적다. 건조한 고운 흙이 바람에 날려 장비에 쌓이는 바람에 바닥에 직접 놓이지 않은 관측장비는 물론, 가방에 들어 있던 관측장비들까지도 손으로 문지르면 붉은 흙이 닦여나올 정도였다.

태블릿PC의 거치대처럼 자석으로 된 물건에는 아예 흙 가루들이 잔뜩 달라붙었다. 흙에 다량으로 포함된 자철광때문에 태블릿 PC의 거치대에 흙이 붙어버려서 떼어내느라 상당히 고생했다. 하다못해 테이프를 열심히 붙였다 떼어냈는데도 거치대가 천으로 된 부드러운 재질이라 흙 입자를 완전히 제거하기는 힘들었다.

신발은 어차피 다음 날 다시 더러워질 게 뻔했기 때문에 닦는 것을 포기했다. 캘굴리에서의 마지막 날 신발을 세탁기에 열심히 돌려 보기는 했는데 워낙 선명하게 물들어 있어서 붉은 기운을 완전히 빼지는 못했다. 무기물 염료인 만큼 표백제도 소용없었다.

이틀에 걸친 이동과 밤샘 관측으로 일행 모두 엄청나게 지친 상태였기에 맥머핀을 사서 바로 숙소로 향했다. 다들 숙소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곯아떨어졌다. 나도 그 날 찍은 사진 중 몇 장만을 골라 보정하다가 잠들었다.


1/26 (목): 두 번째 관측

호주산 쇠고기 스테이크

다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일어났다. 간단히 씻고 정리를 마친 뒤 저녁거리와 다음 날 아침에 먹을 음식들을 사러 차를 끌고 마트로 향했다. 그런데 Woolworths와 Coles의 문이 모두 굳게 닫혀 있었다. 시내의 가게들도 모두 문을 굳게 닫고 있었다. 알고 보니 매년 1월 26일은 Australia day라는 날로, 호주의 법정 공휴일이었다. 대형마트는 물론이고 대다수 가게들이 공휴일에 문을 닫는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인상적이었다. 한국의 노동시간이 OECD 최고 수준이라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다.

식당은 물론 대형 마트 두 곳도 문을 닫았으니 다른 문을 연 상점을 찾기 시작했다. 조금 찾아보니 Hannan IGA라는 일주일 내내 24시간 운영하는 가게가 있었다. 곧장 그 가게로 향했다. 한국의 편의점같은 느낌인 줄 알았는데, 가게의 분위기나 규모, 진열상품 등 측면에서 편의점보다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나 이마트 에브리데이같은 SSM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저녁으로 먹을 고기와 야채, 다음날 아침에 먹을 빵을 샀다. 호주에 온 만큼 호주의 전통(?) 음식을 먹어봐야 한다는 미명 아래 호주의 특산물인 베지마이트도 챙겼다. 고기가 그리 신선해 보이지는 않아서 딱 저녁에 먹을 만큼만 샀다.

가게를 나오는데 계산대 앞 베이커리에서 충격적인 비주얼의 도넛을 팔고 있었다. 선명한 파란색과 녹색 도넛이 있었다. 마치 예쁜 색을 만들기가 귀찮다고 그림판에서 RGB값을 입력해서 적당히 찍은 것 같은 색깔이었다.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비주얼의 도넛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고기를 구웠다. 오늘 산 고기는 바로 우둔살과 꽃등심. 각자 자기 취향에 맞는 굽기대로 좋아하는 양념을 뿌려 고기를 구웠다. 난 평소 먹던 대로 바질과 후추, 소금으로 고기를 먼저 양념하고 저온의 팬에 버터를 둘렀다. 화력을 높이고 버터에서 조금씩 연기가 나기 시작하자 고기를 올리고 양면을 잠깐 익혀 육즙을 가뒀다. 그 뒤 불을 줄이고 양면을 각각 1분정도씩 구워 레어로 익혔다.

첫날 먹은 고기.

호주에서 먹는 호주산 쇠고기는 맛있었다. 뭐 사실 다음 날에 먹었던 안심에 비하면 놀라운 맛은 아니었고, 그냥 고기 맛이었다(…)

고기를 먹고 나서는 끔찍한 기름 범벅 설거지를 해야 했다. 숙소에 식기세척기가 있기를 내심 기대했는데 그런 물건은 없었다. 다만 조금 신기한 수세미가 있었는데, 수세미에 세제 탱크가 있어서 세제를 넣으면 조금씩 배어 나오도록 되어 있었다. 하지만 고기를 먹은 직후 기름 범벅이 된 식기를 위해 설계된 물건같지는 않았다. 수세미에서 조금씩 배어 나올 뿐인 세제는 어마어마한 기름의 홍수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분명 설거지를 열심히 한 식기인데도 손으로 만져 보면 미끌거렸다. 이 문제는 다음 날 주방세제를 따로 사고 나서야 해결되었다.


두 번째 관측

저녁인지 아침인지, 어쨌든 고기로 한 끼를 해결한 뒤 두 번째 관측을 위해 짐을 싸기 시작했다. 장비들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나서 기온과 시상을 확인하기 위해 일기예보를 확인했는데 웬걸. 다음 날부터 비 예보가 있었다. 맙소사. 사막 지역에, 그것도 건기에 왔는데 비라니. 게다가 캘굴리는 1월 강수량의 중간값이 10mm도 안 되는 지역인데 10mm의 비 예보라니. 지지리도 운이 없다. 게다가 주간 예보를 보니 우리가 한국으로 출발한 뒤에야 날씨가 맑아지는 게 아닌가?

별 수 없이 다들 이 날의 관측이 마지막 관측이라는 생각으로 임했다. 이번에는 캘굴리를 떠나 남쪽으로 향했다. 해가 지기 전 출발해 캘굴리 남쪽 10km정도까지 자리를 옮겼다. 전날처럼 샛길을 찾아 들어가려고 했지만, 주변이 전부 광산 지역이라 그런지 도로변을 따라 몇 km 이상 계속 펜스가 이어졌다. 도무지 들어갈 만한 샛길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고속도로변 공터에서 관측을 시작했다. 물론 고속도로변을 관측지로 잡는 건 그닥 좋지 않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다른 수가 없었다. 장노출을 돌려놓기만 하면 상향등을 켠 자동차가 지나가며 우리를 반겨주었다. 다만 딥스카이 사진이 아닌 점상을 찍는 경우 배경이 적당한 밝기로 나와서 좋았다(고 한다.)

A7 II로 가볍게 찍어 본 은하수. 참고로 10초 노출이다.

A7 II로 찍은 은하수. 4분 노출, Lightroom 보정.

마지막 관측이 될 수도 있는 관측이었기에 난 장비를 설치해 놓고 천문박명이 될 때까지 쉬다가 한국에서 정리해 놓은 우선 순위에 따라 관측을 했다. 전날의 관측지에 비하면 광해가 약간 있는 하늘이었다.

관측 중간에 만근이 형이 사라지는 바람에 일행이 다들 찾는다고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큰 소리로 불러보기도 하고, 이리저리 플래시를 비춰 가며 찾느라 상당히 많은 사진을 버려야 했다(…) 다행히 별 일은 없었고 그냥 사진을 찍으러 저 멀리 간 거였다.

둘째날 찍은 사진들

에타 카리나부터 센타우루스자리까지의 광시야 파노라마.

남십자성과 전천에서 가장 밝은 구상성단인 오메가 센타우리.

대마젤란 은하.

소마젤란 은하와 전천에서 두 번째로 밝은 47 Tucanae 구상 성단. 둘 다 맨눈으로도 잘 보인다.

갈매기 성운

장미 성운과 콘 성운.

안타레스와 우리 은하의 중심부.

오리온자리.

관측이 끝나고 해가 뜨자 장비를 정리해서 숙소로 향했다. 선호형이 일출 타임랩스를 찍는다고 해서 해가 뜬 뒤 어느 정도 지평선 위로 올라오고 나서 숙소로 향했다. 돌아가는 길에 캥거루 3마리가 로드킬을 당해 죽어 있었다. 호주에 야생 캥거루가 흔하긴 흔한가보다. 관측 중에 만나서 관측장비를 건드리지 않았기에 다행이다. 300mm 렌즈가 마운트된 QHY8L을 넘어뜨리기라도 했다면…

일출과 함께 서쪽으로 내려가는 지구의 그림자.

두번째 날 관측지 파노라마

둘째 날에 사용한 관측장비들. SIRUI T2204XL 삼각대 위에 Kenko SkyMemo S 적도의를 올리고, 다시 그 위에 캐논 200mm f/2.8 렌즈와 결합한 QHY8L과 칼자이스 55mm f/1.8을 물린 A5000을 물렸다.


영국 요리

숙소로 돌아와서는 아침을 준비했다. 전날 산 빵을 구웠서 먹었는데…빵에서 매운 맛이 났다. 빵에 들어 있던 향신료나 씨앗들 중 하나가 매운 맛을 내나보다. 영국 요리를 두 번째로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급히 포장지를 들고 원재료명을 읽어보니 Wheat flour..뭐시기…그리고…vinegar..이 적혀 있었다. 아니 왜 식빵에 식초를 넣는 거지?

빵을 먹으면서 베지마이트 맛도 보았다. 전날 산 버터가 무염버터라서 빵에 발라 먹으면 싱겁지 않겠느냐는 걱정에 베지마이트를 함께 발라 먹으면 된다(…)는 답을 장난스레 던졌는데 영 아니었다. 베지마이트는 다들 ‘맛만 보고’ 그대로 숙소 냉장고에 두고 왔다(…)

끔찍한 영국 요리로 망친 입맛을 우유로 달랜 뒤 잠에 들었다. 이 날은 해가 완전히 뜬 뒤에야 숙소에 돌아왔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잠들기 전에 사진은 한 장밖에 처리하지 못했다.


1/27 (금) : 마지막 관측

호주산 안심 스테이크

27일에도 아침에 잠든지라 일어나니 어느덧 오후가 되어 있었다. 일어나자마자 바로 전날 가지 못했던 대형 마트로 향했다. Woolworths와 Coles 중 어느 곳으로 갈지 잠시 고민했지만, 햇빛이 워낙 셌기에 오랜 고민 없이 주차장에 지붕이 있는 Coles로 향했다. Coles에는 K mart라는 생활용품을 파는 가게가 붙어 있었다. 한국형 이마트인가..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아주 많은 고기

Coles에서는 아주 많은 고기를 샀다. 안심도 사고, 꽃등심과 부채살도 샀다. 다음날 아침까지 고기로 때울 작정으로 많은 고기를 샀다. 안심은 1kg당 40 호주달러 정도(약 35000원), 등심은 1kg당 18 호주달러 정도(약 16000원)였다. 한국에서는 손바닥만한 안심 한 조각이 30000원이 넘는데 여기서는 같은 돈으로 네 덩어리를 살 수 있다니. 다음 생에는 호주에 사는 부농 2세로 태어나게 해주세요!

안심 스테이크

숙소로 돌아온 뒤 저녁으로 다시 고기를 구워 먹었다. 전날과 같이 각자의 취향대로 고기를 구웠다. 이 날 호주산 안심을 처음으로 먹어 보았다. 난 늘 굽던 대로 겉을 먼저 살짝 태우듯 익히고, 약불에 각 면을 1분 30초정도씩 익혀 속까지 열이 배어들도록 했다. 호주산 안심은 굉장히 맛있었다. 개인적으로 기름기가 많은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지라 더욱 맛있게 느꼈던 것 같다. 한국의 아웃백 스테이크하우스나 빕스에서 먹던 스테이크보다 n배쯤 맛있었다.


마지막 관측

본래는 26일이 마지막 관측이 될 줄 알았지만, 27일에 다시 확인한 일기예보에서 27일의 예상 날씨가 맑음으로 바뀌었다. 다행이었다. 그래도 27일의 관측은 거의 마지막 관측이 될 게 분명했다. 27일 이후로는 캘굴리는 물론 주변 수백 킬로미터 이내에 비나 구름 예보가 없는 곳이 없었다. 그래서 여행 계획을 크게 수정했다.

원래는 1일 밤이나 2일 새벽에 퍼스로 출발해 바로 렌터카를 반납하고 귀국할 예정이었지만, 31일에 퍼스로 이동한 뒤 퍼스에 2일간 머무르면서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그래서 에어비앤비에서 새 숙소를 잡고 현재 머무르던 숙소의 일정을 줄였다. 29일 이후로 캘굴리에서 할 일도 정했다. 29일에는 본격적인 아웃백 관광을 가 보기로 했다. 목적지는 서호주 관광 안내 책자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발라드 호. 30일에는 캘굴리 금광(Super pit) 관광을 갔다 와서 호주의 다양한 와인과 맥주를 맛보기로 했다. 31일에는 웨이브 록(Waves rock)을 거쳐 퍼스로 이동하기로 했다. 1일은 퍼스 시내를 둘러보는 날로 정했다. 동물원에 가고, 바닷가에도 가 보기로 했다. 그리고 2일은 간단히 정리 후 차를 반납하기로 했다.

숙소에서 장비를 챙겨 마지막 관측을 떠났다. 서쪽은 Coolgardie 시내가 있었기에 제외하고, 캘굴리에서 북쪽으로 벗어날까 남쪽으로 벗어날까 동쪽으로 벗어날까를 두고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북쪽으로 벗어나면 남쪽 하늘이 그닥 좋지 않을 것이고, 첫날 갔던 동쪽 관측지가 남쪽에 비해 훨씬 좋았기 때문에 동쪽으로 향했다. 다만 서쪽의 광해를 피하기 위해 첫날보다는 더 동쪽으로 많이 벗어났다.

캘굴리에서 동쪽으로 17km정도 벗어났더니 포장도로가 끊기고 비포장 구간이 시작되었다. 다만 비포장 구간으로 너무 벗어나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아 포장도로의 끝, 캘굴리 동쪽 약 16km 지점에서 관측을 시작했다.

관측 내내 북쪽 지평선 가까이에서 번개가 치는지 하늘이 수시로 번쩍거렸다. 관측지는 맑은데다 천둥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는데, 워낙 광해가 적다 보니 수백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서 치는 번개가 보이는 모양이다. 혹시 관측지에서 엘브스(elves)나 스프라이트(sprites), 블루 제트(blue jets)와 같은 상층 대기 번개(upper-atmospheric lightning)를 볼 수 있지는 않을까 기대했지만 너무 멀어서인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게자리. M44(Beehive Cluster)가 잘 보인다.

쌍둥이자리.

에타 카리나 성운(오른쪽)과 남쪽 플레이아데스 성단(왼쪽)

오리온자리와 외뿔소자리, 큰개자리 영역.

소마젤란 은하

이 날은 박명이 뜨고 시민박명 무렵이 되자 바로 장비를 정리해 숙소로 향했다. 아침으로 남은 식재료들을 해치우고 잠에 들었다.


1/28: 숙소에서

연어와 와인, 그리고 맥주

1월 28일은 구름이 꽤나 있었다. 그래서 이 날은 다양한 서호주산 맥주와 와인을 마셔 보기로 했다.

우선 Woolworths에서 먹을거리와 안주를 샀다. 원래 이 날도 고기를 먹을 생각이었는데, 동겸이 형이 고기 좀 그만 먹고 생선류를 먹자고 하셔서 생선을 먹어보기로 했다. 마침 수산물 코너에서 서호주 현지에서 양식한 연어를 팔길래 2kg정도 샀다. 이 동네는 연어도 싸다. 껍질 벗긴 연어가 1kg에 28 호주달러(약 24500원)밖에 안 된다. 한국에서의 생연어 가격을 생각하면 엄청나게 저렴한데다 현지에서 바로 먹는 만큼 신선하기까지 하다.

Woolworths 앞 풍경. 이 날 유난히 구름이 예뻤다.

호주에서 맛본 다양한 현지 와인과 맥주들.

장을 보고 숙소로 돌아오니 키친타올과 컵을 사지 않은 것이 떠올랐다. 그래서 다시 Woolworths로 돌아갔다. 갔다 오는 길에 운전을 해 봤는데 엄청나게 적응이 안 됐다. 좌측통행이라니! 게다가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다니! 기어봉은 또 왜 거기있니? 방향지시등은 또 왜 거깄어! 비가 오는 날씨라서 와이퍼를 조작해야 했는데, 와이퍼와 방향지시등 레버가 한국과는 반대로 되어 있어서 교차로를 만날 때마다 엄청나게 헷갈렸다. 그래서 교차로에서 방향지시등 레버 대신 와이퍼를 두 번이나 조작했다(…) 교차로에서 우회전을 하는데 우측 차선이 아닌 좌측 차선을 먼저 확인하는 등 실수를 연발했다. (좌측통행이니 우회전을 하려면 먼저 우측을 봐야 한다.) 운전석이 우측에 있다는 것 자체가 뭔가 느낌이 굉장히 어색했다. 차선을 맞춰 달리자니 자꾸 차 왼쪽이 도로 가장자리에 닿을 것 같고, 오른쪽으로 붙자니 중앙선을 넘고. 우회전을 할 때 무의식중에 오른쪽 도로로 들어가야 할 것 같고, 좌회전은 자꾸 너무 크게 돌았다.

연어구이

숙소로 돌아와서 바로 연어를 구웠다. 연어 2kg이 그닥 많지 않았다. 팬 두 개를 써 가며 열심히 구웠는데도 다 구울 때마다 순식간에 사라졌다.

연어와 함께 사 온 와인과 맥주 일부도 마셨다. 호주니깐 건배는 Cheers! 내가 와알못이라 와인에 대해서 자세히 코멘트하지는 않겠다. 그런데 맥주는 맥알못인 내가 마셔 봐도 정말 맛이 없었다. 특유의 홉 향이 괜찮았던 맥주도 몇 개 있었지만, 대다수 맥주는 맛이 없었다. 안 좋은 맛이 있거나 한 게 아니라 정말로 맛이 거의 안 났다. 한국에서 먹던 맥주들보다도 훨씬 묽은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주변 기후가 기후다보니 사람들이 청량감이 강한 맥주를 선호하는 듯 하다.


생일파티와 무지..개..같은..케익…

연어로 저녁을 해결한 뒤 선호형의 생일파티를 했다. 원래 하루 전에 했어야 맞지만 전날 관측을 나간 관계로 이 날 생일파티를 했다. 먼저 케익을 꺼내고 준비한 초를 꽂았는데…아뿔싸. 불을 붙일 방법이 없다. 숙소에 있는 조리기구는 전기레인지뿐. 라이터나 그 흔한 성냥 하나조차 없다. 일행은 모두 비흡연자. 불을 붙이기 위해 한바탕 난리를 피우기 시작했다.

먼저 초를 전기레인지에 가져다 대는 멍청한 짓을 시작했다. 그런데 덩어리 초를 아무리 전기레인지에 문질러봐야 녹기만 하지 불이 붙을 턱이 없다. 초에 심지가 괜히 있겠는가. 심지가 없는 초는 라이터로도 불을 못 붙인다.

초에 직접 불을 붙이는 시도가 실패한 뒤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난 캐논 300mm f/2.8 렌즈로 빛을 모아 불을 붙이는 방법부터(…) 기름을 불이 붙을 때까지 끓인다든가(…) 하는 방법들을 제안했지만 일단은 휴지를 전기레인지에 가열해 보기 시작했다. 결과는 실패. 휴지에 불씨는 생겼지만, 아무리 공기를 불어넣어도 불꽃으로 번지지 않았다.

결국 케익에 불도 붙이지 않은 초를 꽂아놓고 영어로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초를 뽑고 케익을 먹는데…기가 막히게 맛이 없었다. 역시 영연방 국가답다. 크림은 말도 안 되게 달고, 내부에는 웬 무지개떡같은 내용물이 들어 있었다. 포장지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빵이 무지개색인건 알고 있었지만, 맛까지 무지개떡일줄이야. 아니, 차라리 무지개떡 맛이면 낫다. 거기에 생크림과 엄청난 단맛의 조합은 끔찍했다. 빵이 엄청나게 퍼석퍼석하면서도 달고 수분은 적어서 정말 끔찍한 맛이었다. 역시 같은 음식이라도 영연방 국가의 음식은 한국에서 먹던 맛을 생각하면 안 된다. 결국 1/5은 먹었을까. 조금씩 떼어서 먹어보다가 너무 맛이 없어서 나머지는 버려야 했다. 무려 14호주달러짜리 케익이었는데 차라리 옆에 있던 6호주달러짜리 초콜릿 케익이나 사 올 걸 그랬다.


1/29: 아웃백 관광

Menzies

이 날은 많은 서호주 사진들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장소인 발라드 호(Lake Ballard)를 중심으로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다.

Menzies로 가는 길. 비가 계속 오다가 안 오다가 했다.

비는 굉장히 좁은 영역에만 왔다.

캘굴리에서 Goldfields Highway를 통해 북쪽을 향하기 시작했다. 길 오른쪽으로는 버려진 금광 입구들이 보였다. 캘굴리 주변 지역에는 여러 개의 금 광맥들이 넓은 영역에 걸쳐 퍼져 있고, 많은 광맥들은 이미 고갈되어 버려졌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Menzies에 도착했다. Menzies는 캘굴리에서 북쪽으로 130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 버려진 도시이다. 1894년에 도시 근처에서 금광이 발견된 뒤 십년이 채 되기도 전인 1900년에 인구 1만 명을 넘겼지만, 금이 고갈되고 다시 10년이 지난 뒤 인구는 1000명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Menzies의 현재 인구는 50명 남짓이다. 내가 SIM을 구입해서 사용하던 Optus라는 통신사의 망은 아예 깔려 있지도 않았다. 도시 곳곳에는 도시가 훨씬 컸던 시절을 보여주는 잔재들이 남아 있었다.

Menzies의 잔재 중 하나.

Baker’s oven이라는 잔재. 원래 빵집 건물이 있던 곳이었지만 현재는 오븐만 남았다.

Menzies 도시 자체도 정말 작았고, 변변한 상업시설 하나 없었다. 그저 무인 주유소 하나가 있었을 뿐. Menzies의 몇몇 잔재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었다. 기름값은 캘굴리와 비교하면 리터당 10센트정도나 비쌌다. 주유소가 무인 주유소라 동작 방식이 상당히 특이했는데, 먼저 카드 결제기에서 원하는 금액을 결제하면 주유기에서 그만큼이 정확히 주유되는 방식이었다.

카드 결제기에서 결제를 하자 완료되었다고는 하는데 결제승인 알림이 바로 오지 않고 이틀쯤 뒤에 왔다. 아마 네트워크가 연결돼서 실시간으로 승인을 내는 방식이 아니라 항공기 기내에서의 카드 결제처럼 결제내역을 모았다가 수 일에 한 번씩 한꺼번에 승인을 내는 구조로 보인다.

Menzies에서 발라드 호로 넘어가는 길목에는 활주로 두 개를 갖춘 비행장이 있었다. 다만 활주로가 비포장이었다. 항공기나 다른 지원 시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 Menzies가 한창 개발되던 시절 지었다가 지금은 버려진 비행장인가보다.


스네이크 힐과 발라드 호

Menzies에서 기름을 넣은 뒤에는 바로 발라드 호로 향했다. Menzies에서 발라드 호까지는 잠깐의 포장구간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비포장도로였다. 그래도 비포장도로치고는 지반이 잘 다져져 있어서 60km/h~70km/h까지 낼 수 있었다. 도로 중간중간에 Floodway라는 표지판이 있었는데, 작은 돌 부스러기나 나뭇조각같은게 많이 쌓여 있었다. 비도 거의 안 오는데 도로 아래로 물길을 내기에는 비용이 많이 드니 그냥 도로 위로 물길이 지나도록 해 놓은 모양이다.

도로 옆으로 흐르던 개천. 멀리 비가 오는 곳도 보인다.

발라드 호 코앞까지 도착하자 스네이크 힐 방면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있었다. 이정표에는 Site 20이라고 쓰여 있었다. 국내에서 지역별로 XX팔경 YYn경처럼 그 지역의 볼거리 몇 개를 묶어 홍보하듯 여기도 이 지역의 볼거리들을 묶어 홍보하나 싶었다. 스네이크 힐에 올라가면 발라드 호의 전경을 볼 수 있다길래 우선 스네이크 힐 쪽으로 향했다.

스네이크 힐 정상까지는 생각보다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이름은 힐, 즉 언덕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주변 지역과 비교했을 때 스네이크 힐의 높이는 90미터 정도밖에 안 된다. (언덕인데 90미터 정도면 맞는 건가..?) 스네이크 힐에 도착해서 카메라와 삼각대를 챙겨 파노라마 사진을 찍으려는데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많이 쏟아지길래 파노라마만 마무리하고 얼른 차 안으로 몸을 피했다.

스네이크 힐에서 촬영한 파노라마.

그리고 바로 발라드 호로 향했다. 발라드 호로 향하는 길에 다시 비는 그쳤다. 발라드 호 주변에는 넓은 캠핑장이 있었고 간이화장실 따위의 편의시설이 있었다. 발라드 호에 도착하니 우리 일행보다 먼저 버스 한 대와 승용차 한 대가 와 있었다. 차를 호수 바로 옆에 세워 놓고 호수로 걸어 들어갔다.

발라드 호의 유명한 조형물.

발라드 호 파노라마.

발라드 호는 평소에는 말라 있다가 비가 오면 얕게 물이 채워지는 호수이다. 발라드 호에는 서호주 사진에 자주 등장하는 금속으로 된 사람 모양의 조형물이 있다. 이 날은 비가 왔기에 호수에는 1cm 정도의 깊이로 아주 얕게 물이 고여 있었다. 그러나 물이 찬 발라드 호는 끔찍했다. 호수 바닥은 온통 진흙이었는데, 진흙이 물을 흡수해서 질척해져 있었다. 그래서 계속 걷지 않으면 발이 조금씩 진흙에 빠졌다. 조형물이 있는 곳까지 들어갔다 나왔는데, 신발 밑창은 물론이고 옆면까지 온통 진흙 범벅이 되어 버렸다. 다들 진흙 범벅이 된 상태로 차를 타고 내리니 차 안의 매트도 성할 리가 없었다. 차 안도 온통 진흙 범벅이 되어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이 날부터 차 안이 많이 더러워졌다.


나이아가라 댐

발라드 호를 본 뒤 나이아가라 댐(Niagara dam)으로 향했다. 나이아가라 댐은 지금은 사라진 나이아가라라는 마을 옆에 지어진 댐이다. 나이아가라에서는 1895년 금이 발견되어 사람들이 급격히 모여들었고, 한때 인구는 2000여명까지 증가했다. 그리고 마을로 사람과 물자를 실어나르던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나이아가라 댐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십수 년이 채 지나지 않아 금이 고갈됐고, 마을은 버려졌다. 지금은 댐과 함께 댐 옆의 캠핑장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이아가라 댐으로 가는 길은 완전한 아웃백 느낌이었다. 이 때 살아있는 야생 캥거루를 처음으로 볼 수 있었다. 도로 한참 앞으로 캥거루 한 마리가 뛰어서 지나갔다. 길 중간은 커다란 시내가 흐르고 있는 곳도 있었다. 깊이가 그리 깊지는 않아 그냥 차로 건너갈 수 있었지만 꽤나 신기했다. 소 한 마리도 길을 건너갔다.

길을 지나간 소(…)

도로를 가로질러 흐르던 시내

댐 부근에 위치한 캠핑장에 도착하자 우리보다 먼저 자리를 펴고 있는 일행이 있었다. 차를 타고 그 앞으로 지나가자 그들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우리는 댐 바로 앞까지 가서 주차했다. 댐 앞에는 나이아가라에 대한 설명과 댐에 대한 설명을 담은 안내판이 있었다. 댐 호수에서는 수영을 해도 되지만, 댐 물에는 아메바성 뇌수막염(amoebic encephalitis, 흔히 ‘뇌먹는 아메바’라고 알려져 있다)을 일으키는 아메바가 살고 있기 때문에 다이빙을 하는 등 물이 코에 들어가는 일을 해서는 안 되며, own risk 하에 수영을 하라고 써 있었다. 딱히 수영이 내키지는 않았다. 게다가 우리가 여행을 간 계절은 수온이 높고 강수량이 적은 여름이라 뇌수막염을 일으키는 아메바가 활동하기 딱 좋은 날씨이기도 했다.

나이아가라 댐

나이아가라 댐 파노라마. 참고로 사진 왼쪽 끝과 오른쪽 끝부분은 겹친다.

댐 앞에 있던 안내판을 쭉 보니 Site들을 소개하고 있는 안내판이 보였다. 자세히 읽어보니 Golden Quest Discovery Trail이라고 해서 이 주변의 관광지들을 묶어 정리해놓은 목록이었다. 서호주 Goldfields 지역의 주요 관광지들에 1번부터 25번까지의 번호가 붙어있었다. 참고로 전체 관광지를 방문하기 위해서 달려야 하는 거리는 965km(…) 우리가 머무르던 캘굴리의 Super pit이 Site No. 25 이고, 아까 기름을 넣었던 Menzies가 Site No. 6였다. 드디어 스네이크 힐 앞에 있던 Site No. 20이라는 안내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안내판에는 해밀턴 경로로 된 추천 관광 코스도 적혀 있었다.

댐과 댐 호수 옆에 있던 바위에서 몇 장의 파노라마 사진을 찍은 뒤 댐을 잠시 구경했다. 댐 아래로는 송수관이 길게 뻗어 있었다. 저 관을 따라가면 버려진 나이아가라 시가지의 흔적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Menzies 방향으로 차를 돌렸다.

가는 길에 있던 철길 건널목 옆에 잠시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가는 길에 있던 시내에서도 설정샷(?)을 찍었다.

나이아가라에서 Menzies로 가는 길에 있던 철길 건널목.

차로 물을 헤치는 장면을 찍는 선호형. 역시 직업정신이란…

원래는 바로 캘굴리로 돌아가려 했지만, Site 중 하나였던 Menzies cemetery를 그냥 지나치기는 아쉬웠다. 그래서 Menzies 시내에서 차를 돌려 cemetery 방향으로 향했다. 그러나 Menzies cemetery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담장도 철조망으로 되어 있어 넘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바로 캘굴리로 향했다.

Menzies Cemetery에 도착했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캘굴리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도로변으로 밝은 제련소가 보였다. 캘굴리의 Super pit에서 캐낸 금 광석은 우선 부근의 제련소에서 1차로 분쇄한 뒤 폭기해 금이 풍부한 상부의 거품만을 분리해내고, 이 제련소(Gidji Processing Plant)로 옮겨와 시안화물을 이용한 제련 과정을 거친다. 제련소는 굉장히 거대했다. 아마 관측을 하러 북쪽으로 왔다면 이 거대한 제련소의 광해에 시달렸을 테다.


1/30: 금광 관광?

금광 관광?

1월 30일은 금광 관광을 가기로 했던 날이다. 관광은 전날 미리 신청해놨다. 비용은 인당 70AUD(약 64000원)정도. 아침 9시 30분에 출발하는 일정 외에는 예약이 가득 차 있었기에 9시 30분 일정을 선택했다.

출발일에는 아침 일찍 일어났다. 일어나 보니 밖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관광 안내 페이지에 나와 있던 대로 긴 팔, 긴 바지 옷을 챙겨입고 금광 관광 안내소로 향했다. 금광 관광 안내소에 도착한 것은 9시 20분쯤.

그렇게 안내소에 도착했는데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9시 30분 무렵이 되어도 근처에 모이는 사람들이 없었다. 아니, 그렇게 예약이 가득 차 있었는데 막상 가 보니 아무도 없다니. 안내소에 들어가서 직원에게 금광 관광에 대해 물어보았다. “우천으로 인해 금광 관광은 취소되었고, 다른 날로 일정을 옮겨 잡아 드리거나 전액 환불해드릴 수 있습니다. 이메일로 관련 안내가 갔을 텐데 못 받으셨나요?” 그제서야 이메일을 확인했다. 기상 문제로 인해 관광이 취소되었다는 메일이 와 있었다(…) 다음 날 캘굴리를 떠날 계획이었으니 일정을 미룰 수는 없었고, 환불을 받기로 했다.

아쉬움에 관광 안내소를 둘러보았다. 관광 안내소는 금광과 관련된 다양한 기념품을 파는 기념품점을 겸하고 있었다. 서호주산 금을 사용한 금(도금)화나 금가루, 금 잉곳, (가짜) 금괴, 금괴모양 USB 메모리같은 온갖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만근이형은 위도와 시간, 날짜를 설정하면 어떤 별자리가 보이는지 확인할 수 있는 천구본을 샀다. 별방에 갖다 놓을 생각이라고. 나는 금도금된 금화를 샀다. 그래도 금광 도시까지 왔는데 서호주산 금으로 된 기념품 하나쯤은 사야 될 것 같아서였다. 동겸이형은 캥거루 인형을 샀다. 그리고 이 캥거루 인형은 이후 동겸이형의 상징 아닌 상징이 된다(…)

동겸이형의 캥거루 인형(…)


영국 요리

일단 딱히 할 일이 없어졌으니 우린 아점부터 먹기로 했다. 원래 이 날은 금광 관광을 마친 뒤 피시 앤 칩스를 먹기로 했었다. 그런데 전날 가려고 알아둔 안내소 근처 피시 앤 칩스 식당은 굳게 문을 닫고 있었다. 문 앞에 걸려 있던 영업시간을 보니 오후 4시에야 문을 연다고 한다. 그래서 관광 안내소와 같은 건물에 있던 써브웨이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써브웨이 옆에 호주 현지 체인으로 보이는 비슷한 가게가 있었다. 나는 ‘호주에 왔으니 호주 현지 체인점을 가야지!’라는 논리로 옆에 있던 가게로 가자고 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겠지만 묘하게 써브웨이보다 손님도 훨씬 적고, 가격도 약간 더 비쌌다(…)

옆에 있던 가게로 가서 치킨 랩을 시켰다. 누구는 치킨 랩을 시키기도 했고, 쇠고기가 든 핫도그 비슷한 음식(?)을 시키기도 하고, 각자 자기가 원하는 음식을 시켰다. 승자는 치킨 랩을 시킨 사람이었다. 핫도그 비슷한 음식은 빵과 고기로만 이루어진데다 엄청나게 짰다고 한다.

치킨 랩. 맥도날드의 스낵랩과 맛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Coles에 가서 먹을거리를 샀다. 전날 오프로드를 달리며 엄청나게 더러워진 차를 조금이라도 씻어내보겠답시고(…) 차는 Woolworths 주차장에 주차했다. Coles의 주차장에는 지붕이 있어 차에 비를 맞힐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날도 고기와 술을 샀다. 장을 다 보고 나와 보니 부슬부슬 내리는 비는 차를 씻어내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원래 이 날은 오전에 금광 관광을 갔다온 뒤 점심을 먹고 오후부터 술을 마실 예정이었지만, 예정보다 이르게 음주를 시작했다.

이 날은 정말 다양한 와인과 맥주를 마셨다. 난 와알못이므로 이번에도 와인에 대한 평가는 생략한다. 하지만 아무리 맥알못이라도 맥주에 대한 평가 하나만은 자신있게 내릴 수 있다. 정말 맛이 없었다. 호주에서 현지의 맥주를 마시는 것은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물론 청량감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다를 수도 있겠지만.


1/31: 웨이브 록, 그리고 퍼스로

웨이브 록으로의 여정

남은 2박분의 캘굴리 숙소비를 환불받고, 웨이브 록을 향해 출발할 준비를 했다. 숙소에 풀어헤쳐 놨던 짐들을 다시 주워담고, 기적의 벽돌쌓기로 차 안 트렁크와 좌석 가득 짐을 쌓고, 오랜 여정 동안 우리에게 전기를 공급해 줄 인버터와 멀티탭도 연결했다. 그리고 웨이브 록을 향해 출발했다.

웨이브 록은 캘굴리에서 남서쪽으로 500km정도 떨어져 있다. 캘굴리에서는 점심 무렵 출발했다. 중간에 길이 갈라지는 마을인 Merredin까지 이제는 꽤나 익숙해진 풍경들이 보였다. 끝없는 사막과 덤불, 끝없이 이어지는 송수관과 종종 나오는 민가의 반복. 그렇게 한참을 달려 Merredin이라는 마을의 주유소에 도착했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가득 채우고 주유소 안에 있는 편의점에서 몇 가지 과자를 샀다. 베이컨맛 치즈볼과 이상한 과자(?)였는데 둘 다 아주 짰다. 치즈볼이야 원래 짠 과자니 그렇다 치는데 이상한 과자는 기름에 튀긴 과자인데도 불구하고 짠 건 물론이고 신맛까지 났다. 대체 왜 튀긴 과자에 신맛을 넣는건지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는 영국인들의 입맛을 이해하기에 아직 수련이 부족한 것이라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Merredin에서 웨이브 록이 위치한 마을인 Hyden까지는 서호주에서는 비교적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이다. 그래서인지 목장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지평선 끝까지 뻗어 있는 목장에는 소들이 점처럼 퍼져 있었다. 중간중간에는 대규모 축사에서나 보던 거대한 사료 사일로들이 있었다. 호주에서 파는 축산물들은 웬만하면 free range(방목)가 기본이다. 역시 땅덩어리가 넓으면 모든 산업에서 규모부터가 달라진다.

많은 목장들을 지나고 다시 너른 벌판을 지나 웨이브 록에 도착했다. 웨이브 록 옆에는 리조트와 골프장, 카페가 있었다. 관리 주체는 모두 같은 모양이었다.


웨이브 록

웨이브 록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된 특징적인 파도모양 구조.

웨이브 록은 선캄브리아대에 형성된 거대한 한 개의 화강암 덩어리이다. 선캄브리아대에 이 지역에 분포한 넓은 퇴적층 사이로 화강암이 관입했고, 그 지반이 지표면 가까이까지 올라오자 지하수가 차기 시작했다. 거의 평평한 지표수의 수면과 달리 지하수면은 위치에 따라 그 높이가 다르다. 그리고 그런 지하수면을 따라 바위의 풍화가 집중되어 지하수면이 위치하던 부분은 주변 바위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해졌다. 이후 지속된 차별침식에 의해 주변의 퇴적층은 깎여 나가고, 화강암 덩어리가 지표면으로 노출됐다. 그러나 지하수면이 위치하던 부분의 화강암은 화학적 풍화를 받아 주변에 비해 훨씬 강도가 낮아져서 지하수면을 따라 바위가 깎여 나갔고, 남은 부분이 현재 웨이브 록의 파도와 같은 지형을 형성했다. 웨이브 록과 같은 바위덩어리를 인셀베르그(inselberg)라고도 부르는데, 이 주변 지역에는 비슷한 과정으로 형성된 다수의 화강암 인셀베르그가 흩어져 있다.

웨이브 록 앞에는 매표기가 있었다. 입장료는 무인 매표기에서 차량 단위로 결제하고, 발행된 입장권을 차 앞쪽에 끼워 두면 되었다. 입장료는 6명에 20AUD(약 18000원.) 인당 3000원꼴이다. 입장권을 끊어 바위 위로 올라갔다. 가는 도중 두 개로 갈라진 갈림길이 있었다. 왼쪽으로 가면 2km하고도 조금 더 긴 거리를 걸어 트레킹 코스를 통해 올라갈 수 있었고, 오른쪽으로 가면 파도 형태의 지형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둘 중 어느 쪽으로도 향하지 않았다. 정면 바위의 경사가 생각보다 급하지 않길래 양쪽으로 나뉘는 갈림길을 무시하고, 코스를 이탈해서 곧바로 정면의 바위로 올라갔다(…) 올라가니 콘크리트로 된 나지막한 울타리가 있었고, 울타리 안쪽으로 물이 흘러가고 있었다.

정면으로 바위 오르기

바위 윗면에 있던 울타리.

웨이브 록은 현재 Hyden 마을의 상수원으로 쓰이고 있다. 바위 윗면의 둘레를 따라 물을 모으기 위한 울타리가 쳐져 있고, 바위의 낮은 부분에는 댐이 지어져 있다. 그래서 바위 위에 비가 내리면 바위 위로 떨어진 물은 울타리를 따라 댐 안쪽으로 흘러간다. 웨이브 록 자체가 거대한 하나의 불투수층이다 보니 이 집수 시스템은 유역 내에 내린 강수의 80%까지 댐으로 모을 수 있다고 한다. 집수용 울타리를 넘어 바위 상단으로 올라갔다.

웨이브 록 윗면에서 찍은 파노라마.

웨이브 록에 내린 빗물이 모여드는 댐. 전형적인 콘크리트 중력댐이다.

바위 상단에는 토양이 거의 없었고, 중간중간에 작게 움푹 패인 곳에 마사토 느낌의 모래가 약간 있었다. 그러나 그런 환경에도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바위 여기저기에는 얕은 웅덩이들이 있었는데, 웅덩이들은 어김없이 물이끼가 채우고 있었다. 비바람에 그대로 노출되는 바위 윗면에는 지의류들이 가득했다. 웨이브 록에는 정말 다양한 지의류들이 있었다. 청록색 지의류가 제일 많았지만 등색 지의류도 있었고, 연녹색 지의류도 있었다. 살면서 이렇게 많고 다양한 지의류를 본 적은 없었다. 호주는 중국의 영향을 받는데다 인구 밀도도 높은 한국에 비해 대기 질이 훨씬 좋으니 이 정도로 많은 지의류가 살 수 있는 것일 테다.

물웅덩이와 그 옆에 자라는 나무

웨이브 록의 다양한 지의류

웅덩이마다 물이끼가 가득하다.

웨이브 록을 산책하던 중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올라온 길은 굉장히 급한데다 비가 오는 바람에 미끄럽기까지 해서 다른 내려갈 길을 찾기 시작했다. 웨이브 록의 동측 돔을 한 바퀴 돌아봤지만 내려갈만한 길은 보이지 않았다. 웨이브 록 입구의 표지판은 동쪽을 통해 올라가는 길이 있다고 안내하고 있었지만 정작 그렇게 올라오는 길을 바위 위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서측 돔 쪽으로 갔다. 멀리 보이는 사람들이 댐 방향으로 향하기에 댐 옆으로 가 보니 계단이 있었다. 계단을 통해 바위 아래로 내려와 주차장에 세워 둔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곧바로 퍼스로 출발했다. 퍼스까지 남은 거리는 300km정도.

웨이브 록 중앙의 돔에서 동측 돔으로 가는 길.

과거에 웨이브 록은 건축 자재를 마련하기 위해 발파를 당하기도 했다. 사진에 보이는 판 모양 돌들이 발파의 흔적이다.

웨이브 록 동측 돔 위에서.

내려가는 길.

‘웨이브’ 아래에서.


퍼스

웨이브 록에서 2시간 30분 정도를 더 달려 퍼스에 도착했다. 우리가 묵을 숙소는 퍼스 국제 공항 근처의 벤틀리라는 지역에 있었다. 숙소에서 걸어서 얼마 되지 않는 곳에 Coles와 Woolworths가 있었다. 꽤나 늦은 시간이었기에 고기로 저녁을 간단히(?) 해결하고 현지 라면을 안주 삼아 와인과 맥주를 마셨다. 한국의 볶이류 라면처럼 물을 털어낸 뒤 소스에 비벼 먹는 제품이었는데, 라면 역시 짠 건 매한가지였다.

퍼스의 숙소에는 식기세척기가 있었다. 이 좋은 물건이 왜 캘굴리의 숙소에는 없었을까. 고기 위주의 기름진 식단과 식기세척기의 조합은 그야말로 완벽하다. 대충 접시에 묻은 찌꺼기만 털어낸 다음 식기세척기에 넣고 돌리면 기름때가 마법같이 사라진다.

잠들기 전 마지막 희망을 갖고 다음 날의 날씨를 확인했다. 예보를 보니 다음 날 퍼스 날씨가 상당히 괜찮았다. 최상의 시상은 아니었지만, 구름이 거의 없어서 관측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그래서 다음 날 밤 Perth Observatory에서 관측을 하기로 했다.


2/1: 퍼스에서의 하루

킹스파크와 식물원

퍼스는 뉴욕의 센트럴파크처럼 중심지 한가운데에 킹스파크라는 커다란 공원이 있다. 킹스파크는 특이하게 커다란 공원 안 구석구석에 여러 개의 주차장이 있어서 공원 한가운데까지 차를 끌고 들어갈 수 있었다. 마치 남산의 강화판같은 느낌이랄까? 한국의 공원들은 대부분 입구에만 주차장이 있어서 내부는 걸어 들어가야 하는데 특이한 케이스였다.

메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킹스파크 내의 식물원으로 향했다. 식물원에서 free guided walk가 12시에 진행된다는 안내판이 있기에 일단 안내소로 향해서 guided walk를 기다렸다. 그리고 12시에 가이드가 도착했다.

Guided walk에서 식물원에 대한 재미있는 설명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가이드에 따르면 킹스파크의 식물원은 전부 서호주의 고유종만으로 채워져 있다고 한다. 전 세계의 어느 대륙과도 다른 특이한 생물상을 자랑하는 호주의 식물들이 종류별로 있다니! 특이한 식물들이 워낙 많아서 식물원은 굉장히 재미있게 둘러볼 수 있었다. 그리고 역시 식물원 입구부터 유칼립투스나무가 종류별로 있었다.

킹스파크에서 바라본 퍼스 도심.

Marri(Corymbia calophylla)의 꽃.

목재나 아로마 오일로 유명한 유칼립투스나무는 오세아니아 지역에만 서식하는 호주의 대표적인 고유종이다. 식물원에는 다양한 유칼립투스 나무가 심어져 있었는데, 대부분은 세 가지 종이 차지했다. Marri라는 종(Corymbia calophylla)과 Jarrah라는 종(Eucalyptus marginata), 그리고 Tuart라는 종(Eucalyptus gomphocephala)이다.

페퍼민트(Agonis flexuosa)의 돌연변이체.

그 밖에도 페퍼민트(Agonis flexuosa, 박하로 잘 알려진 그 식물이 아니라 Swan River peppermint라고 불리는 유칼립투스의 일종)와 페퍼민트의 돌연변이체도 있었다. 가이드가 페퍼민트의 잎을 뜯어 주며 냄새를 맡아보도록 했는데, 잎이 상처를 입으면 굉장히 강한 향이 났다. 돌연변이체는 엽록체 돌연변이체인 듯 잎에 흰색 무늬들이 있었다.

뱅크시아의 꽃.

뱅크시아(Banksia)라는 호주 특산 식물도 종류별로 전시되어 있었는데 화서 구조가 굉장히 특이했다. 마치 천남성과의 육수화서처럼 수꽃과 암꽃이 분리되어 하나의 커다란 기둥에 붙어 있었다. 다만 천남성과와 같은 불염포는 없었다.

Boab tree(Adansonia gregorii.) 줄기의 수많은 상처는 운반 과정에서 난 것이다.

Boab tree(Adansonia gregorii)라는 서호주 킴벌리 지방의 특산 나무도 있었다. 킹스파크의 식물원에 있는 Boab tree는 킴벌리 지방에 고속도로를 건설하면서 건설 예정지에 있던 나무를 옮겨 온 것이라고 한다.

Blackboy라고도 불리는 Grasstree(Xanthorrhoea sp.) 생기기는 저렇게 생겼어도 식물의 모든 부분이 식용 가능하다고 한다.

이외에 mulla mulla(Ptilotus sp.)라고 불리는 호주 특산 식물과 Grasstree(Xanthorrhoea sp.)라는 호주 특산 식물도 있었다. Grasstree류는 호주에만 서식하는 Asphodelaceae의 일종인데, 매우 굵으면서도 내부가 빈 줄기가 특징적이었다. 이 식물은 외떡잎식물임에도 불구하고 극적인 부피 생장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킹스파크 식물원을 한 바퀴 돌며 guided walk가 끝났고, 바로 옆에 있는 State War Memorial이라는 일종의 추모공원에 잠시 들렀다. 공원이 Swan River의 강어귀 바로 앞에 있어서 공원에서는 퍼스 도심지가 한 눈에 보였다. 선호형한테서 잠시 광복이(Canon EF 8-15mm Fisheye)를 빌려 사진을 찍어 봤다. 갑자기 어안렌즈 뽐뿌가 오기 시작했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차에 올라 점심으로 피시 앤 칩스를 먹으러 출발했다.

광복이로 담은 퍼스 도심지의 풍경.

이런 재미있는 구도도 찍을 수 있다.


영국 요리 3

구글 맵을 뒤져 보니 부근의 피시 앤 칩스 전문점 대부분은 오후 네 시에야 문을 열었다. 이제 오후 두 시를 갓 넘긴 시점이었기에 문을 연 피시 앤 칩스 전문점은 Hillarys Boat Harbour라는 항구 부근에 위치한 곳 하나뿐이었다. 킹스파크에서는 20분정도 거리. 바로 항구로 출발했다.

항구에 정박되어 있던 요트들. 상당수는 새 주인을 찾고 있다.

Hillarys Boat Harbour은 요트들을 정박해 놓을 수 있는 작은 항구였다. 항구에는 커다란 상업 시설이 달려 있어서 많은 식당과 가게들이 있었다. 우리는 수많은 훨씬 맛있어 보이는 식당들을 뒤로하고 피시 앤 칩스 전문점으로 향했다.

피시 앤 칩스.

피시 앤 칩스 전문점에서 6명 모두 피시 앤 칩스를 주문하고 앉았다. 식당이 바닷가 바로 앞에 있는지라 갈매기들이 엄청나게 들어오려고 했다. 갈매기들을 피해 안쪽에 자리를 잡고 잠시 기다리니 음식이 나왔다. 비주얼은 의외로 괜찮았다. 감자와 생선튀김만으로 구성되긴 했어도 꽤나 푸짐했다. 식당에는 딱 두가지의 양념이 있었다. 식초와 소금. 추가적인 소스는 모두 별도로 구매해야 했다. 역시 이 동네 사람들은 짜고 신 것만 좋아하네..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는데 튀김을 한 입 베어물자마자 그 생각을 접었다. 식초와 소금의 조합이 생각보다 튀김이랑 잘 어울렸다. 생선튀김도 생선의 질 자체가 상당히 좋아서 꽤 맛있었다. 식사를 마친 뒤 바로 Caversham Wildlife Park라는 동물원으로 출발했다.


Caversham Wildlife Park

퍼스 중심가에는 Perth Zoo라는 유명한 동물원이 있다. 이 동물원은 킹스파크 바로 옆에 있을 뿐만 아니라 도심 한가운데에 위치하기 때문에 접근성이 굉장히 뛰어나다. 그러나 우리는 캥거루와 코알라를 직접 눈앞에서 만져볼 수 있다는 말에 Caversham Wildlife Park라는 시 외곽의 동물원으로 향했다.

Caversham Wildlife Park는 퍼스 시가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그래 봤자 차로 20분 정도였지만, 한국으로 치면 대략 서울이나 광역시와 주변 지역 사이의 그린벨트 정도 느낌이 풍기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다.

동물원에 도착한 시간은 16시 무렵. 코알라를 직접 만져볼 수 있다는 Meet the Koalas 프로그램의 마지막 회차가 16시부터 16시 반까지였기에 입장권을 끊고 들어가자마자 코알라 우리쪽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코알라를 직접 만져볼 수 있었다.

Meet the Koalas

코알라는 손등을 이용해서 등 부분만 살짝 만져볼 수 있도록 했다. 코알라의 감염이나 부상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안의 코알라

소형 유대류들.

슈가글라이더.

조류들

이후 동물원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호주의 고유종 유대류들과 조류들이 여럿 있었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슈가글라이더나 왈라비같은 동물은 물론, 익숙치 않은 다양한 동물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딩고도 있었는데, 언뜻 보기에는 영락없는 똥개였다(…) 색만 봐도 그냥 길거리에서 자주 만나볼 수 있는 흰색이나 검은색의 개들이었다. 너무 늦은 시간에 도착한지라 파충류 전시관은 문을 닫아서 아쉬웠다. 많은 우리들이 높은 담장을 설치하기보단 낮은 나무담장을 설치해서 새들이 안팎을 오가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공작들이 자유자재로 돌아다니는 걸 보면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건지 동물들이 우리 안에 있는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캥거루

캥거루 우리는 대략 이런 분위기이다(…)

캥거루들은 호기심이 많아 보인다.

오리들에게 다가가면 재빨리 몸을 피한다.

뛰어다니기도 하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공작도 돌아다니고…

마지막 순서로 캥거루 우리로 향했다. Caversham Wildlife Park의 최대 자랑은 사람이 직접 들어가서 먹이를 줄 수 있는 거대한 캥거루 우리이다. 우리 입구는 캥거루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하는 2중의 문으로 되어 있었다. 우리 안으로 들어갔는데 캥거루들이 딱히 사람을 무서워하지는 않았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다가와서 기웃거리는 걸 보면 호기심이 많아 보였다. 우리 안에는 캥거루 뿐만 아니라 공작과 오리도 많았다. 특히 오리의 경우 캥거루와 그 수가 비슷했는데, 사진을 찍으려고만 하면 열심히 도망다니는 통에 함께 사진을 찍지는 못했다.

캥거루 우리 안에서 먹이를 주기도 하고,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사진을 찍다 보니 어느덧 폐장 시간이 다 되었다. 일몰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었기에 슬슬 해변가로 갈 준비를 했다. 하늘에 구름이 꽤 많아 보이길래 출발 전 마지막으로 저녁 날씨를 확인했는데, 아침까지만 해도 맑았던 예보가 어느덧 구름많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타임랩스 정도를 찍기에는 괜찮았지만, 마지막 밤을 Perth Observatory에서 보내기로 했던 계획은 포기하기로 했다.


City Beach

우린 일몰을 보러 City Beach라는 해변으로 향했다. City beach는 퍼스 시가지 바로 옆에 있는 해변이라 접근성이 대단히 좋았다. 해안가에는 낚시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한국은 사람이 많이 사는 도시 주변에 해빈이 거의 없어서(대부분 방파제를 쌓으면서 연안류를 통한 모래 유입이 적어진 탓이다)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었다. 서서히 해가 저물어갈 무렵 해변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어안렌즈의 세계

300mm 2.8로도 사진들을 좀 찍어 봤다. 애기대포는 잘 안 되던데, 300mm 2.8은 컴라이트 EOS - NEX 어댑터로 AF가 꽤나 잘 잡혔다.

Galaxy S7으로 찍은 사진. 역시 폰카의 다이나믹 레인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카타와레도키

해가 진 뒤 지구의 그림자가 구름 위까지 드리우는 모습을 보고 장을 보러 출발했다. 장을 보기 직전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었는데 연료탱크 용량이 70L인 기아 카니발에 기름이 66L나 들어갔다. 조금만 늦게 주유했어도 시동이 꺼질 뻔 했다. 장을 본 뒤, 숙소로 돌아가서 마지막 저녁을 먹었다. 남은 와인과 맥주도 모두 처리하고, 남은 인스턴트 라면도 안주로 소진했다.

마지막 저녁


2/2: 다시 한국으로..

세차, 그리고 일주일간의 흔적

마지막 날 아침

2월 2일 아침은 파스타로 해결하고, 우선 차를 세차하러 세차장으로 갔다. 세차장은 숙소에서 걸어서 5분정도 거리에 있었다. 세차장에 붙어 있는 가격표는 꽤나 경악스러웠다. 소형차가 150 AUD, 그리고 SUV, 승합차 등 차종에 따라 세차비가 300 AUD까지 올라갔다! 호주의 인건비를 다시 한 번 체감했다. 세차장에는 한국인 직원들도 서너 명이 있어서 안내해 주셨다. 우리가 맡긴 기아 카니발은 200 AUD란다. 그런데 세차장 직원이 차 상태를 보고 경악했다(…)

그도 그럴 것이, 차내 매트란 매트는 전부 붉은 흙으로 범벅이 되어 있고, 차내에 흙덩이들이 굴러다니는 것은 물론 트렁크랑 시트까지 온통 붉은색이었으니깐. 차량 외부는 더 심각해서 주차장에서 우리 차를 찾기가 아주 쉬웠을 정도였다. 다른 차에 비해 유난히 붉은 차를 찾으면 끝이었다. 직원에 의하면 매트를 따로 세탁해야 하는 것은 물론 시트도 다 세제로 닦아야 해서 세차 시간이 1시간정도는 걸릴 거라고 했다. 그리고 이 상태 그대로 렌터카 영업소에 반납하면 수백 AUD 이상의 세차비를 물릴 것이라는 팁(?)도 덧붙였다. 하긴 차 상태를 보면 그런 말도 납득은 되었다(…)


공항으로

세차장에 차를 맡기고 숙소에 돌아와서 짐을 정리하고 잠시 휴식을 취하다 보니 어느덧 차를 찾을 시간이 되었다. 세차장에서 차를 받아 와서 숙소에서 짐을 싣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공항 렌터카 카운터를 찾느라 잠시 이리저리 돌며 삽질하다가, 반납시간을 5분정도 남기고 무사히 반납에 성공했다. (호주는 반납시간이 조금만 늦어도 하루치 요금을 더 물린다고 한다.) 반납할 때 직원이 차를 잠시 살피더니 차 옆이 찌그러진 걸 가리키며 어디서 사고가 났냐고 물어보았다. 주차장에서 나오면서 구조물에 받았다고 하니 다친 사람은 없냐고 묻더니 완전면책 보험이 있으니 가도 좋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완전면책 보험을 들어도 서류같은 걸 따로 써야 했는데, 여긴 그런 건 따로 없는 모양이었다.

공항으로 와서는 짐의 무게를 달아 보았다. 버진 오스트레일리아 체크인 카운터 앞에 저울이 있기에 내 캐리어의 무게를 달아 보니 무려 23kg이었다(…) 그래서 렌즈 두 개를 배낭으로 옮기고 짐을 이리저리 옮기는 짓을 한참동안 해서 겨우 가방 무게를 19.8kg으로 맞추었다. 가방 무게를 맞추고 에어아시아 체크인 카운터쪽으로 돌아오며 보니 수하물 서비스 카운터에서 선호형이 열심히 무게를 재고 있었다. 수하물 서비스 카운터는 충격 방지 포장이나 무게 확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는데, 저울을 한 번 이용하는 것조차 2AUD를 지불해야 했다. 선호형이 이미 4AUD를 냈다기에 버진 오스트레일리아 체크인 카운터에서 무료로 짐의 무게를 잴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에어아시아 카운터쪽으로 향했다.

에어아시아 체크인 카운터에서 위탁수하물을 맡기려고 줄을 섰는데, 먼저 짐을 맡긴 경훈이한테서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들었다. 배낭의 무게가 기내 휴대 기준(7kg) 이하인지 검사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배낭을 경훈이에게 맡기려다가, 배낭 무게를 잰 뒤 태그 같은 걸 붙여준다기에 포기하고 렌즈와 카메라, 보조배터리 등 무게가 나가는 물건을 전부 주머니에 넣었다.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후드티와 외투를 껴입고 남는 주머니마다 뭔가 묵직한 물건이란 물건은 전부 집어넣었다. 그리고 뒤통수를 맞았다. 위탁수하물의 무게는 17.8kg이 나왔고, 배낭 무게는 아예 재지도 않았다(…) 만근이형은 위탁수하물 무게가 23kg인데도 별 말 없이 통과시켜 줬다는데, 그냥 무거운 걸 전부 위탁수하물에 넣어버릴 걸 그랬다 ㅠㅠ


말레이시아로 출발

수하물을 부친 뒤 출국장으로 올라갔다. 면세점에서 비행기에서 쓸 메모리 폼 목베개와, 친구에게 줄 선물 몇 개를 샀다. 목 배게를 산 것은 오는 비행기 안에서 목이 뻐근해서 엄청나게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출국심사와 보안검색을 마치고, 남은 호주달러 동전을 소진하기 위해 면세점 몇 곳을 돌아보았다. 잠시 돌아다니다 보니 웬 바 겸 카페에서 선호형이랑 다빈이형이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나도 무언가를 먹기 위해 일단 앉았다. 잠시 고민하다가, 호주의 젖소 품종의 우유로 만든 에스프레소 배리에이션의 맛이 궁금했기에 카푸치노를 시켜 보았다. 지방 맛이 강하니 더 고소했다.

호주의 카푸치노. 가격은 웬만한 한국의 커피 체인보다 저렴했다.

선호형이 타임랩스 영상(공항을 걸어가는 장면)을 찍는 것을 돕고, 어느덧 보딩 타임이 되어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는 쿠알라룸푸르로 출발했다. 쿠알라룸푸르행 비행기는 빈 자리가 되게 많았다. 쿠알라룸푸르에서 퍼스로 오는 비행기는 빈 자리가 없이 가득 채워서 왔었는데, 이번에는 내 옆 자리도 비어서 비교적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쿠알라룸푸르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이 여행기를 쓰기 시작했다.

쿠알라품푸르행 비행기에서도 기내식을 시켜 먹었다. 최대한 다양한 기내식을 맛보고 싶었기에, 주문이 가능한 기내식 중 안 먹어 본 2종류의 기내식을 모두 시켜서 먹어봤다.

설정샷.

실제. 가격은 음료와 요거트까지 해서 24 링깃. (한화 약 6100원)

그 첫째 타자는 치킨 라이스, 치킨이 다소 짜긴 했지만 맛있었다. 딱히 호불호가 갈리는 맛은 아니었고, 바베큐 느낌으로 조리된 치킨과 볶음밥이 같이 제공되었다.

설정샷.

실제. 초코두유는 따로 시킨 것.

다음으로는 채식 커리 라이스를 먹었다. 채소들이 알맞게 익어 꽤나 맛있었다. 가격은 다른 기내식들과 동일한 18 링깃. (한화 약 4600원)

이후 6시간의 비행 끝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KLIA2에 도착했다. 10일쯤 뒤 김정남 피살 사건이 벌어진 바로 그 터미널이다. 인천행 항공편은 완전 다른 방향의 거의 끝 게이트에서 탑승해야 해서 꽤 긴 거리를 걸어야 했다. 퍼스에서 위탁수하물에 넣을 짐을 전부 휴대로 돌린 탓에 휴대수하물의 무게가 무지막지했기에 고통스러웠다.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잠시 기다리다가 인천행 비행기에 올랐다.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의 게이트는 특이한 구조였다. 탑승권을 확인한 뒤 바로 항공기에 탑승하는 것이 아니라, 탑승권 확인 후 대기실에서 대기하다가 이후에 탑승했다.


귀국!

난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잠들었다. 사실 난 내가 자는 줄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보딩브리지를 분리하고 푸시백을 시작한 뒤에 정신을 잃었고, 정신을 차려 보니 이미 항공기는 공중에 있었다(…) 거의 필름이 끊긴 수준…

창 밖 서쪽 하늘 위로 보이는 비너스 벨트. (지구의 그림자)

아래로 제주시 시가지가 보인다.

5시간정도를 비행한 끝에 지평선 끝에서 비너스 벨트가 보였다. 내 자리가 왼쪽 창가였기에 서쪽 하늘 위로 서서히 그림자가 드리우는 모습이 보였다. 이윽고 제주도가 보였고, 제주시 시내도 보였다. 30여분을 더 비행한 끝에 평택 근처에서 서서히 하강하기 시작했고, 인천국제공항에 무사히 착륙했다.

하지만 난 호주행에 이어 한국행 항공편에서도 세관신고서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인천국제공항에 내려 따로 세관신고서를 작성해야 했다. 짐을 찾고 세관신고서를 작성한 뒤 입국장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나머지 일행과 함께 6003번 버스를 타고 서울대쪽으로 향했다.

선호형은 학교 정문에 내려 기숙사까지 걸어간다기에 따로 보내고, 나머지 다섯명은 서울대입구역에서 내려 역 앞의 더진국 수육국밥집을 찾았다. 수육국밥으로 아침(겸 점심..)을 먹은 뒤 집으로 돌아와 짐을 정리했다.

호주 여행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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